Sunday, July 5, 2009

Pattern Study : 변화하는 패턴들, 고정되는 축들, 질문들 2

대화는 다시 아주 작은 OS, 모바일의 조작성, 매직 코너에 대한 얘기로도 이어졌습니다. 애플의 아이팟이나 윈도우의 시작 버튼. 맥의 익스포제.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 때로는 조작의 실수를 범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들도 존재하지만, 간결성을 요구하는 현대 디자인들은 안전장치를 일부러 서툴게 만들곤 합니다. 어느정도의 손해를 감안하는 것일까요?


작은 사이즈의 모바일들은 여성의 가방에도 가젯을 집어넣게 합니다. 그들의 가방은 남성의 가방들과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을까요? 전자제품이 없던 시절, 과거의 가방과 지금 현대의 가방의 공통점들과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이템과 정리방식들, 물건에 대한 기호와 기준은 성별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는 다시 IT 마켓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물음과 상상의 답변은 이어졌습니다.

단순화 하여 공간의 활용을 높이느냐, 복잡화하여 접근 성의 속도를 빨리 하느냐. 미디어의 변화는 여기에 어떤 노이즈를 주게되고..남자들은 별 수 없이 더 많은 아이템들을, 여성은 별 수 없이 정리하게 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결국 정리술의 과정 요소들도 모두 하나의 UX 로 포섭될 수 있진 않을까요?

"결국 단순화는 시간축으로, 복잡화는 공간축으로 정보를 배치한 것. 에드워드 터프티의 정보시각화 중.남자는 시간 축에 익숙하고 여자는 공간축에 익숙하다고 해석해도 될까?" - 리거니 -

"일반적인 방식과 또 다른 해석이네요. 어쩌면 남자가 공간을 계속 재고 고심하는 것이, 공간 감각에 남다른 이유가 시간축에 더 익숙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이건 참 좋은 얘기. - 구스 -

계속해서 고정된 틀과 기술,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변화하는 요소들에 대한 얘기도 했습니다. 짜여진 틀에 집어 넣는 것이 아니라, 핵심되는 에너지로 끌려오게 만드는 것. 그리드, 탈그리드 시키는 요소들을 만드는 기준들도 힉스입자 처럼 어쩌면 변화하는 것은 아닐까요?

" UX가 어떤 종교나 트랜드화 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내부에서 발견하는 그 무엇인 것 - 없던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고, 궁극적이고 당연한 것이기에 알리기도 어렵고 그런 당연한 것을 통해 감동을 주기도 매우 어렵습니다." - 구스 -

훌륭한 디자인들은 의외로 매력이 없는 경우가 많지요. 한편, 상업적으로 성공한 웹사이트, 디바이스들은 모두 본래 목적 이외의 것들을 매우 풍부히 가지고 있습니다. 디자인에 저해된다던 복잡성들이지요. 그리고 이 상태의 지속이 바로 결국 죽는 형태를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가지를 칠 것인가, 아니면 옮겨 심을 것인가를 어떤 시점에서는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사실 UX 의 궁극은 변화 그 자체에 있다. 감성, 효율, 목적성이 들어간 디자인 안에 모두 존재한다."

각 웹사이트는 분화하면서 또 복잡한 생태계를 구축합니다. 따라서 돌연변이들도 필요합니다. UX 는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 충격파쯤 되려나요? 일본의 모바일 산업에서 보여주는 완벽한 독립들속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디바이스들이 있기에 그들의 생태계가 존속 가능한 것은 아닐까요?

images from HyunChung
트위터는 어째서 국내 언론에게 이렇게 큰 주목을 받게 되었을까요? 새로운 이슈로 끝이 날까요? 아니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까요? 모바일과 연동하는 트위터의 개념이 자리잡지 않고 또 형식, 죽어버린 생태계의 형식만을 수용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미투데이나 페이스북이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트위터와 같은 형태가 드러나게 되었다면 그것은 또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트위터는 이제 sns 커뮤니케이션의 어떤 근본적 포맷을 제시한 건 아닐까요?

UX 팩토리, 그외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독립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더 심각해져야할까요? 아니면 더 자유로워야 할까요? 스터디 그룹이 지닌 비 민주적 성격, 그러나 민주성을 동반한 폭력, 커뮤니티가 가지는 숙명들을 생각하면. 모임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에너지들의 필요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라인 쇼핑몰 포맷 차이에서 느끼는 감정이 다양하듯, 커뮤니티의 소통 도구들과 방법에 대한 감각도 차이가 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이 하나안에서 조화를 이루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 리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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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우연히 만났던 6개월전 이후 첫 만남이었지만, 어색함없이 곧바로 UI, UX에 대한 이야기 꽃일 피울 수 있었습니다. 단지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한 대화였기 때문에, 포스트잇을 활용한 즉석 드로잉을 하면서 대화를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들을 아이콘으로, 후에 대화가 끝난 뒤에도 까먹지 않고 미투와 트위터를 이용해 다시 정리 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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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tern Study : 변화하는 패턴들, 고정되는 축들, 질문들

지난 6월 한달간의 한국여행은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온/오프라인의 관계에서 맺어진 지인들을 실제로 만나볼 기회가 있었고, 그분들과의 대화안에서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중요한 문제들을 재 인식하기도 했고, 잡힐것 같은 느낌을 갖기도 했었습니다. UXfactory리거니님과의 만남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다소 산만하지만, 미투에 적어놓았던 짤막한 글들을 바탕으로 단락을 재구성해 봅니다. 위의 어떤 그림에 어떤 이야기가 맞아 떨어질지는 읽으시는 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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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중심 화제는 알렉산더 크리스토퍼의 Nature of Order, 4권째의 스케일에 대한 것들. 루돌프 아른하임의 중심의 힘을 좀더 수학적으로 풀어낸 기분이었습니다. 거기에 최근 동경 여행에서의 도시 텍스쳐, 스케일, 모바일 디바이스들의 유아이 스케일감에 대해, 또 여기에 따른 사용자 접근성에 대한 얘기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때로는 웹이 빠르며, 때로는 실제로 움직이 는것이 빠르다. 그런 빠르기들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문해력 (D-literacy) 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 리거니 -

문해력은 다시 감각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그 경험의 깊이도 바뀌고, 이런 논리나 얘기들을 스케치나 드로잉 워크샵을 통해 구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같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스케치나 드로잉의 직관적 표현력을 올리려면 또 감정이라던가 주관적 지표를 버리고 순수히 도화지 내의 세계에 적응 하여야 하는데, 그런 감각들을 어떻게 하면 참가자들이 재미있게 놀며 경험할 수 있을까. 추상성에 대한 이해와 스케일간격에 대한 감각훈련들에 대한 것으로, 자세한 이야기는 다시 미투에 정리를 했습니다.

화지의 절대적 세계에 대한 얘기에 맞추어 또 게임들— 스포어, 심시티등이 지닌 무한한 자유성들이 실은 제한된 인터랙션으로 구축되어있다는 얘기, 그리고 WOW 와 같은 거대한 세계에서 개인이 지니는 힘은 실제 인간과 같아 진다는 얘기도 저에겐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컴퓨터 게임의 세계도 결국 인간 유저가 즐기는 이상 현실세계의 법칙들에서 자유로울 수 는 없겠지요. 때문에 한없이 열려있을 것 같은 구조들이 실제로 모두 열려있는가? 자유로운 것들이 모두 자유로운가? 하는 질문들도 뒤따르게 되고, 이렇게 핵심되는 구조를 잃으면 결국 모두 와해되는 것들에 대한 예로 오픈소스, 에스페란도의 예까지 나왔습니다. 이는 언어나 프로그래밍을 넘어 SNS 나 커뮤니티에서도 발견되고 -- 이러한 인간이 노는 환경에 대한 것은 곧, 건축이로군요.

이어 쿠마 켄고의 약한 건축, 그리고 부분의 합으로 구성되는 일본 도시의 구조들 (도쿄의 미학)을 통해서 전자-유기체형 미래 도시얘기를 꺼내기도 했었고, 그 현실 가능성이 어쩌면 디자이너가 원하는 세계의 폭력적인 강요가 아닌가 하는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책임의식, 디자이너를 지우는 이성적인 작업들, 지구 (환경)와 콜라 (기호식품과 오픈소스) 에 대한 이야기들도 이를 뒷받침 하는 좋은 예들 이었습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것의 사용방법, 또 어떤 매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질적인 활용도에서 비등해질 때도 있음을 디자이너는 잊어선 안됩니다. 뉴욕타임즈와 같은 질적 완성도의 오프라인 매체는 온라인 매체가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과 유아이를 이미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 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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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4, 2009

Information flow : 새로운 정보의 짜임






사람들은 항상 새로움을 원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는 늘 새로운 형식에 담겨 전파되었다. "새로움이란 뿌리부터 잎사귀 까지 새로워야 한다!" 정말일까? 사실 새로움이란, 보지 못했던 것도, 처음에 존재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 놓여진 상태, 기존 패턴의 연속위에 놓여진 관계에서 비롯되는 낯설음. 그것이 바로 새로움은 아닐까?

최근들어 한국에서도 서서히 알려지는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들 - 미국의 트위터, 한국의 미투데이 - 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바로 며칠전 미카와 나눈 대화에서 문득 튀어나온 나의 말을 미투데이에 기록해 두었었다.

"트위터 미투데이등, 마이크로 블로그사이트들을 타 서비스의 대체제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이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건 모두 같이 키워나가는 방법(정보의 유통구조, 아키텍쳐)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마이크로 소셜 네트워크가 어떤 특별한 성질이나 역할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논의되고 있는 것들이 어떤 새로운 형태의 실험도 아니다. 새로운 정보는 RSS 로도, 혹은 즐겨찾기로도 볼 수 있고 마이크로 블로그를 구성하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이를 기존 서비스를 완전히 대체하는 새로운 서비스로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 그러나 기본적인 텍스트, 단순성을 극대화한 정보들이 각자 건강히 발전하면서 유기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드러내는 정보의 제한성, 받아들이는 사용자들의 피드백의 제한성등 커뮤니케이션에 힘든 요소들이라 여겨지던 것들이 더 빠른 속도, 시대의 상징인 모바일과 연동해 오히려 강력한 도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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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와 미투데이는 둘 모두 비슷한 시기에 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둘은 다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화되어 각각 제한요소들의 성격들을 다르게 유념해 발전시켰다. 한편, 사용자들 사이의 긴밀한 유대로 UX를 구축하고 있는 유통기라는 것은 동일하며, 이것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둘의 공통점과 차이를 읽는 것은, 현재 가장 앞선 정보 유통 구조의 짜임이 어떻게 진화 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동안 지켜 본 트위터와 미투데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보짜임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있다 - 예로 들자면, 에피타이저 - 메인요리 - 디저트와 같은 코스식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밥과 반찬이 올라와 있는 한정식을 먹을 것인가 정도의 대단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각 정보가 시간에 강력히 영향받고 독립되어 있으며, 후자는 주어진 상 안에 이미 메인과 서포트하는 정보들로 층위가 구분된 특징이 있다.

미투데이는 익숙한 정보의 층위가 있다. 업로드 된 게시물이 '밥'이라면 리플과 태그는 '반찬'과 같다. 한 상에 모두 놓여진 밥과 반찬처럼, 사용자는 밥을 먹는다. (메인 글)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윽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들을(리플, 멀티미디어 요소들) 똑같은 상에 끌어와 입에 넣을 수 있다. 정보간에 층위가 있고, 다른 형태들에 맞추어 놓여있다는 점은 마이크로가 아닌 일반적인 웹 서비스들에서도 보여지는 것이고, 이것이 사용자로 하여금 지속적인 대화를 매우 익숙한 틀-형식으로 가능케 한다. 게다가, 외부의 정보들중 동영상, 이미지 등은 텍스트 내부에 숨겨진체 다채롭게 기능한다. 트위터의 링크들이 초반 취지와 달리 150자의 압력에 더 무의미한 알파벳들로 변하고 있는 와중, 단어의 뉘앙스와 링크의 관계는 또 다른 statistics를 연상해 볼 수 있다. 익숙한 형식들 속의 낯설음은 결국 큰 컨트라스트를 만들어, 미투데이를 기존 사이트, 트위터와도 다르게 만든다. 이는 미투가 선택한 새로움이자, 앞으로 새로움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한편, 트위터의 세계는 적어도 눈으로는 어떤 층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시물, 리플, 소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목적이나 형태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모두 똑같은 게시물로 취급한다. 마치 코스요리의 순서만 차이가 있지, 실제로는 각 요리가 테이블공간을 완전히 장악하듯, 트위터의 꼴(툴의 형태)은 내가 작성하는 모든 글의 뉘앙스나 느낌에 영향 미친다. 연결의 형태도 가시적이지 않고 분절되어 있다. 이 공간에서 시간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용자들은 거의 현재 올라오는 속도와 흐름에 동참하길 요구받고 그 시간감을 통해 정보의 의미를 파악하게된다. 트위터는 근본부터 새로운 툴이다. 하지만 시간을 바라보는 트위터의 방식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웹에서 시간성은 사실 언제나 초월하고 극복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똑같이 흐르게 만든다는, 이 낯설음 속의 익숙함(시간)이야말로 트위터가 지닌 진정한 매력인 것이다.

불완전하고 짧고, 제한된 텍스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정보의 유통기로 사용한 것은, 정보의 생산도구가 아니라 정보를 나열하는 방식, 정보를 보여주는 방식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정보를 멋지게 요리해 새로운 그릇에 담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요리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 하는 문제. 이 이해를 돕기위해 한국식 밥상과 서구식 코스요리에 비유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제시한 비유나 매력이 아니라, 익숙한 공간과 패턴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 움직임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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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작한 대만의 새로운 SNS 서비스인 Plurk은 이 둘과는 또 다른 형태로 출발한다. 아예 타임라인 자체를 들어내며, 적어내는 문장 구조조차 제한한다. 시간을 더더욱 강조하고, 기존 서비스에서 보기 어려웠던 가로 스크롤까지 활용한다. 새로운 정보짜기는 그 자체로 새로움을 제공하고 있다. 동영상, 사진, 텍스트 스타일등이 서서히 고착화 되자마자 다시 이를 배열하는 방법의 낯설음을 추구하는 것처럼, 이 유통과 짜기가 보편화 되었을땐 다시 무엇을 새롭게 보려고 할까. 그 다음이 너무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어서 마이크로 블로그와 소셜이 더 자연스럽고 특이성을 인식하게 되지 않길 희망한다.

"전화기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사람들은 오페라를 들려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화가 처음 만들어 졌을때는 연극을 아카이브 하려고 했었고. 마이크로소셜은 링크를 전달하고 아카이브하고 있다. 이것들이 애인과의 전화통화, 데이트하러 가는 공간처럼 변하기를 못내 기대한다."

Wednesday, June 17, 2009

Reading : 책 읽는 행위

현대의 책이 지금의 형태로 굳기 전, 고대의 책은 사실 조각 예술품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물성은 단단하고 딱딱한 것들의 조합이었고, 투박한 글씨들이 아로 새겨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선택 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고, 책을 쓰는 이들과 책을 읽는 이들의 숫자는 대동 소이 하지 않았었다고 보여집니다. 종이를 통해 조금씩 부드러워 졌고, 가장 최신의 아마존의 킨들과 같은 전자책,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 책은 사실상 미디어위에 정지된 것이 아닌, 전자 신호로서,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우리는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지식들과 호흡하고 나의 사고 체계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책을 읽고 쓸 수 있고,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부담도, 또 써야하는 의무도 없습니다. 수 천년의 역사를 거친 독서의 의미는 과거와 현재에 이르러 이렇게 큰 차이가 납니다.

긴 시간동안의 독서 역사에 변화가 없는 것이 있다면 역시 책을 읽는 행위라는 말 그 자체일 것 입니다. 책의 의미와 형태는 계속 변화해도 우리는 그것들을 여전히 책이라 부르고, 읽는 행위도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져도 그대로 적용 됩니다. 즉, 집적물이 올려진 틀을 단지 읽는다는 감각에 집중하여 깊숙히 경험하는 것. 이 것만큼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이런 행위에 사실 어떤 의미가 있을지, 또 이것이 좋은지 나쁜지,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독서를 하면 건강해질까요? 독서를 하면 똑똑해 질까요?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질문에 독서 그 자체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어떤 이들은 특정한 책에 빠져 스스로의 논리에 허우적 대며 사회를 곤혹에 빠트리기도 하며, 일부 난해하게 쓰여진 책은 우리의 지식습득욕을 떨어뜨리고 오히려 새로움에 대한 공포를 선사 합니다. 사실, 많은 이들의 독서 예찬론에 저도 언제나 한 몫 거들고 있지만, 그것은 역시 책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의 강요가 아닌가 후회할 때도 많습니다. 독서는 뉴트럴 한 것인데두요.

디자인 전공서와 만화책들을 주로 올리고 있는 미투데이의 책 리스트들, 그리고 코멘트들은 저의 독서방식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가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즐기는 것들을 투과하는 소재들. 그리고 책을 읽기 위한 공통된 형식들.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덧 붙여 제가 책을 보고, 읽고, 경험하는 방식은 곧, 책을 만드는 관점, 책의 생산자가 독자를 상상하며 시도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 그리고 이런 창작자의 심리를 아무것도 모르는 체 읽는 독자의 시선으로 산산조각 내며 접근하고 있을 뿐 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독서, 즉 정보나 지식을 얻기위한 목표도 아니고,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기 위한 삶의 교훈을 얻기 위함도 아닙니다. 어떠한 기대도 없는 저 개인의 독서 방식은 저의 사고체계의 연장(또 도구)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독서에 대해 이야기 하라 하면 저는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할 때 보다 훨씬 더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디자인은 앞뒤의 자리가 빠져있습니다. 말 그대로 '디자인'일 수 있고, 디자인 '하다' 일 수 있고, '무엇'의 디자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서는 다릅니다.

'책을 읽다.' 여기에는 더 이상의 무언가가 뛰어들 공간이 없습니다.

다만 어떤 책, 그리고 어떻게 읽느냐는 문제만 남아있을 뿐 입니다.

Saturday, May 9, 2009

Hobnox : Tool Architecture

호브녹스는 자바스크립트와 플래쉬를 이용한 온라인 음악제작 어플리케이션, "호브녹스 오디오툴"을 운영하는 미디어 웹사이트다.



이것저것 누르고 만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과 비디오, 라이브러리등이 완성된다. 특히 "오디오툴"은 향후 수 년내 음악도 이미지와 동영상처럼 더 많은 사용자들에 의해 직접 만들어질 것을 암시한다.

음악프로그램이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면서 보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UI를 발전시키고 있지만 여전히 접근성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많다. 필기구와 종이를 타블렛과 모니터로 확장시키고 암실과 이미지 공작 작업을 포토샵으로 전이하는 것은 사용자들이 쉽게 이해하는 데 반해, 디지털 음악은 평소에 해오던 행위의 연장이 아니라 별도의 학습을 필요로 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터넷 상의 글쓰기에 모든 이미지, 텍스트 편집과정이 포함되고 이를 통해 젊은 세대가 시각커뮤니케이션의 감각을 익히듯, 음악도 단순화된 웹기반 서비스들에 의해 더 빨리 퍼져나갈 것 같다. 이런 경험들은 단순히 시장의 크기를 키우는 것 뿐만 아니라, 공간과 이미지 웹서비스 곳곳에 음악이 삽입되어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기반도 된다.

오디오툴즈가 단순한 음악프로그램을 넘어 시선을 더욱 잡아끄는 것은, 단지 음악적 시도를 넘어 다양한 툴을 화면상에 배열하는 그리드기반 정렬 방식 때문이다. 사용자는 음악제작뿐 아니라 툴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배열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더 아름다운 배열, 더 효율적인 배열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새로운 음악프로그램, 개발툴의 아이디어들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들어, 이펙터와 신시사이저 기기들 사이의 복잡한 전선들의 관계등도 가상현실상에선 무한히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호브녹스에서도 몇가지 기능만 추려서 아주 가벼운 게시물로 만들어 보는건 어떨까. 아이팟 터치등에서 곧바로 작업해서 퍼블리슁하는 어플리케이션도. 상상은 끝이 없이 전개된다. 아래는 간단히 몇번의 클릭으로 만들어진 즉흥 컴퍼지션. 자기만의 BGM 무드를 제작하기에는 더할나위 없는 툴이다.



단순한 신시사이저와 몇개의 이펙터로만 시작했던 서비스는 최근 새롭게 톤 매트릭스툴을 추가했다. 더욱 쉽고 간단하게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여기에 보컬녹음, 외부 음원을 불러들이는 것도 가능해진다면, 스튜디오 작업의 완벽한 웹연동, 유명 아티스트의 웹 라이브를 단체 체팅과 함께 관람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Monday, May 4, 2009

Easy : Difficult

실력을 드러내는 말, 언행과 태도를 진심으로 만드는 문서. 디자인에서 쓰기와 말하기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불과 수%의 디자이너만이 업무시간 외에도 이 작업을 계속한다. 대부분은 포기하고 만다.

예술의 경우에는 작자가 굳이 대중앞에 나서서 말하거나 글을 쓸 이유는 없다. 사실, 그를 돕기 위해 갤러리와 기획자 큐레이터들이 존재한다. (이런 분업화를 보면 예술이 훨씬 고도로 산업화된 집단이라고 볼 수 도 있겠다. ) 그러나 디자이너는 필히 사람들앞에서 본인이 설명하고, 말하고,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글쓰기와 독서는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글쓰기를 열심히 하다보면 궁금증이 일곤 한다. 내가 쓰는 글을 사람들은 과연 잘 이해해 줄까? 설득력과 진지함을 얻기위해서 내가 사용한 단어들이 혹, 지나치게 뽐내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어려운 단어 선정이 독자의 이해를 막는 장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보다 쉬운말로, 더 편한 말투로 쓰면, 사람들은 과연 좋아할까? 싫어할까? 어쩌면 깊이가 없다고 무시하진 않을까?

또 독서를 계속하다보면 이런 질문들도 하게 된다. 지금 나는 내가 읽는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혹여 나는 그저 책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들을 내 작업에 이용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독서하는 건 아닐까? 이해할 수 도 없는 책을 들고 있는 것은 어쩌면 시간낭비가 아닐까? 알지도 못하는 단어들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 깨닫는 다는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쉬운 책을 보자.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 록 전부 어려운것 투성이인데...

쉬울까? 어려울까? 두 질문은 디자이너가 꾸준히 쓰고 말하는 태도를 방해하는 훼방꾼 이기도 하다. 인풋과 아웃풋에 의해 만들어지는 모든 결과물이 - 만일 그 결과물이 나, 혹은 상대의 이해와 재생산을 구하는 것이라면 - 지닌 끝없는 딜레마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독자, 나와 작업, 독자와 작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디자인 과정에까지 이어진다.그리고 대부분은 반드시 해야하는 업무적인 작업외에 이 고민을 연장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회피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정도면 쉬울까? 이정도면 어려울까?' 를 알려면, 어쨌든 써야 하고, 또 보아야 한다. 그리고 보여주어야 하고, 또 반응도 살펴야 한다. 10년 전에 읽었던 책이 오늘 읽었을땐 어떨까. 어제 쉬운줄 알았던 그림이 오늘은 또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간단히 뿜어낸 문장이 전혀 다른 문맥으로 읽히기도 하고, 오랜기간 나눠온 친구의 대화가 가끔은 어긋나기도 한다. 쉬움과 어려움은 내가 먼저 표현하지 않고서는 경험할 수도 없고 설정할 수 도 없는 일이다. 둘 사이의 정확한 경계는, 지금 내가 구하고자 하는 순간에 늘 빗겨나간다. 어쩌면 간격을 찾아나가고 있는 과정이, 답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을 정도다. 쉬운 글을 쓰고, 쉬운 그림을 그리고, 어려운 글을 쓰고, 어려운 그림을 그려본다. 또 쉬운 책을 보고, 어려운 책도 본다. 나에게 어려웠는가, 쉬웠는가, 또 상대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재차 물어본다.

디자이너가 된다는 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분법적 판단은 지양하지만, 이분법 그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호감이 있다. 쉬움, 어려움 이라는 좌표를 일단 임의로 설정해 놓고, 그 양 끝을 왔다 갔다 하며 중심잡기 하는 것, 그 진폭이 바로 훌륭한 작가나 끈기있는 디자이너, 또 건강한 독자들의 운동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경계가 희미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설 이유가 없다. 계속 해야한다. 참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꿈틀거림이 아닐 수 없다.

Sunday, May 3, 2009

Design : Language

미국에 들어와 영어를 배우는 것은 마치 디자인을 공부하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연상시킨다. 지도를 펼치고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어디로 갈 것 인가 끊임없이 재고 판단하는-

언어는 의사소통하기위해 탄생한 것이다. 내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자 하면 물, 마시다, 또 부탁하고자 하는 단어를 특정 소리 값, 문자 값으로 하자고 약속한 것. 그러므로 이는 분명히 편의, 경제적 속도를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데만도 수년이 넘게 걸리고, 심지어 배웠다 하더라도, 능숙히 사용하는데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엄청나게 든다. 전혀 경제적이지 않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울 때는 교과서를 놓고하는 것이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했었지만, 수 많은 기호와 상징 요소, 또 배열하고 전개하는 과정의 축적 모두가 언어인 탓에, 영어 하나를 배워도 어떤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지, 위치파악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한국어 사용을 통해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공문서와 메신저, 친구와 부모, 학교와 클럽, 직장동료와 거래처 직원, 또 동네친구와 동호회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우리가 보기엔 별 차이 없지만, 외국인에게 전혀 다른 한국어들이다.

'영어를 공부' 하는 것과 '사용하는 영어'는 전혀 다른 문제다. 교과서 예시들은 인터넷, 블로그나 유튜브 답글에서는 찾기 어려우며, 영문 블로그 글들은 그들의 일상대화와 매우 다르다. 한 언어 속에 이미 수많은 언어가 있는 탓에, 영어학습을 위한 학습은 단지 영어공부의 시작점 - 다름을 인지하기 위한 기준을 잡는 초석 - 에 불과하다. 세대 차이, 공공장소와 개인공간의 영어,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에 맞춰주는 미국인과 진짜 미국인의 영어등 갈곳이 너무나 멀다.

디자인 문제로 보아도 마찬가지다. 최근 불고 있는 열풍에 힘입어 디자인 학원, 대학의 강좌들 그리고 학생들은 넘친다. 그러나 디자인도 학교와 사회, 제품과 판매,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들사이와 같이 수 많은 영역들이 있다. 그 안에서도 스타일과 문법이 또 천차만별이다. 디자인을 배운다는 결국 디자인에 무슨 영역들이 있고, 내가 가야할 곳, 지금 있는곳 사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 배우는 영어가 영어시험을 위한 것인지, 청과물 점에서 사과를 사는 목적인지,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것인지, 친구를 사귀기 위함인지, 꾸준히 가늠하는 것과 똑같다.

디자인을 수년, 십여년 배워왔고 이제 졸업해서 경력도 쌓았으니 '나도 디자인 전문가!' 라고 하는 사람들은, 혹시 내 디자인이 어떤 곳에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린, 장롱 외국어와 똑같은 수준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물론, 현재 처한 환경이 영어 시험장이라면 전혀 걱정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