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 역사는 서구사회 모더니즘의 위기, 몰락의 시기와 겹친다. 1972년의 미노루 야마자키의 아파트 붕괴의 정확히 10년전, 한국 사회에는 광복과 분단이후 정부의 주도로 지어진 첫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이후 서구 사회에서 실패한 케이스로 취급받던 아파트는 한국사회에서는 선진국 사회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이 사이에는 한국에 들어온 일련의 정치적 도구로서의 모더니즘 - 오해와 번역상의 실수가 존재한다.
아파트는 서구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근대 주거모델의 첨병이지만, 한국 사회의 그것은 모던의 양식과도 다르고, 오히려 독자적인 양식과 형태를 따른다. 한국의 아파트엔 단일 건축가로 통용되는 모더니즘의 서명의식은 없다. 모더니즘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입면 평면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모더니즘의 문제점, 주변환경과의 유리되는 성격 조차 그 독특한 아파트 사용문화에 의해 희석된다. 60년대의 정권상황과 맞물려 아파트는 잠깐동안 시민들에게 도시사회의 상징으로 거부감을 준다. 그러나 이후, 경제 발전, 건축회사들의 새로운 미디어 그리고 정치의 활용으로 아파트 단지는 이용자들의 네트워크 기계로서, 독자적인 힘을 자랑하며 상류사회문화를 이끄는 핵심이 된다. 이후, 경제의 위기와 새로운 아파트에 대한 열망은 이런 아파트 붐을 주도한 건설사에 의해 또 한차례의 실험을 낳게하는 원인이 된다.
21세기에 이르러, 집단적인 경제논리에 의해 파생된 브랜드 주상복합의 열기는 기실 이전 경제발전시기의 그것의 의도적 확장에 다름이 아니다. 다만 그 확장은 단순한 크기뿐 아니라 심리적인 요소 - 시각매체와 가상체험을 활용한 - 의 확장까지 이른다. 이를 홍보하기 위한 모델하우스는 한국의 모던에 대한 욕망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상건축을 위한 건축이 외려 실제 아파트보다 더 극단적인 현대성을 추구한다는 것에 우린 주목해야 한다. 정작 본 아파트보다 더 원조 모더니즘에 가까운, 환상적인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이 독립된 건물은, 가상 주거환경 체험의 장이다. 투자를 유치하고 자본과 여론을 끌어들이고, 아파트의 성공적인 판매 후에 용도의 변경을 통해 또 다시 변신한다. 그야말로 한국 아파트의 문화가 낳은 가장 이질적인 문화이자 가장 한국적인 문화일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주거문화는 이 아파트의 발전과정과 닮아있다. 모델하우스의 비 동기성, 일시성, 표면적인 모던에의 추구처럼. 아파트를 구입하고 소비하는 한국사회는 이런 성격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것은 나쁜 것일까? 나는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을 꺼린다. 물론, 서구사회가 모던을 지나 포스트 모던에의 실험과 다시 현대로 들어서는 과정과 그것의 모방인 한국사회의 건축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관점은 기저에 존재한다. 한국의 모던은 코어 레퍼런스에의 접근부족, 디자인이 아닌 경제에 맞추어진 발전이고, 이런 특질이 만들어낸 구멍들에 전통문화가 녹아 현재의 주거는 완전히 다른 돌연변이 상태에 이르르지 않았는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가상체험문화를 시작으로, 경제에 맞추어져 만들어지는 균일화된 공간들, 그리고 거기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책의 첫 표지가 드러내는 공허함 처럼, 짧은 호흡으로 서구의 모던 부터 한국의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글은 그렇게 일반화된 논리로 급하게 겉 핥기만 하며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