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을 드러내는 말, 언행과 태도를 진심으로 만드는 문서. 디자인에서 쓰기와 말하기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불과 수%의 디자이너만이 업무시간 외에도 이 작업을 계속한다. 대부분은 포기하고 만다.
예술의 경우에는 작자가 굳이 대중앞에 나서서 말하거나 글을 쓸 이유는 없다. 사실, 그를 돕기 위해 갤러리와 기획자 큐레이터들이 존재한다. (이런 분업화를 보면 예술이 훨씬 고도로 산업화된 집단이라고 볼 수 도 있겠다. ) 그러나 디자이너는 필히 사람들앞에서 본인이 설명하고, 말하고,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글쓰기와 독서는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글쓰기를 열심히 하다보면 궁금증이 일곤 한다. 내가 쓰는 글을 사람들은 과연 잘 이해해 줄까? 설득력과 진지함을 얻기위해서 내가 사용한 단어들이 혹, 지나치게 뽐내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어려운 단어 선정이 독자의 이해를 막는 장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보다 쉬운말로, 더 편한 말투로 쓰면, 사람들은 과연 좋아할까? 싫어할까? 어쩌면 깊이가 없다고 무시하진 않을까?
또 독서를 계속하다보면 이런 질문들도 하게 된다. 지금 나는 내가 읽는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혹여 나는 그저 책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들을 내 작업에 이용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독서하는 건 아닐까? 이해할 수 도 없는 책을 들고 있는 것은 어쩌면 시간낭비가 아닐까? 알지도 못하는 단어들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 깨닫는 다는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쉬운 책을 보자.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 록 전부 어려운것 투성이인데...
쉬울까? 어려울까? 두 질문은 디자이너가 꾸준히 쓰고 말하는 태도를 방해하는 훼방꾼 이기도 하다. 인풋과 아웃풋에 의해 만들어지는 모든 결과물이 - 만일 그 결과물이 나, 혹은 상대의 이해와 재생산을 구하는 것이라면 - 지닌 끝없는 딜레마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독자, 나와 작업, 독자와 작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디자인 과정에까지 이어진다.그리고 대부분은 반드시 해야하는 업무적인 작업외에 이 고민을 연장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회피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정도면 쉬울까? 이정도면 어려울까?' 를 알려면, 어쨌든 써야 하고, 또 보아야 한다. 그리고 보여주어야 하고, 또 반응도 살펴야 한다. 10년 전에 읽었던 책이 오늘 읽었을땐 어떨까. 어제 쉬운줄 알았던 그림이 오늘은 또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간단히 뿜어낸 문장이 전혀 다른 문맥으로 읽히기도 하고, 오랜기간 나눠온 친구의 대화가 가끔은 어긋나기도 한다. 쉬움과 어려움은 내가 먼저 표현하지 않고서는 경험할 수도 없고 설정할 수 도 없는 일이다. 둘 사이의 정확한 경계는, 지금 내가 구하고자 하는 순간에 늘 빗겨나간다. 어쩌면 간격을 찾아나가고 있는 과정이, 답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을 정도다. 쉬운 글을 쓰고, 쉬운 그림을 그리고, 어려운 글을 쓰고, 어려운 그림을 그려본다. 또 쉬운 책을 보고, 어려운 책도 본다. 나에게 어려웠는가, 쉬웠는가, 또 상대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재차 물어본다.
디자이너가 된다는 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이분법적 판단은 지양하지만, 이분법 그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호감이 있다. 쉬움, 어려움 이라는 좌표를 일단 임의로 설정해 놓고, 그 양 끝을 왔다 갔다 하며 중심잡기 하는 것, 그 진폭이 바로 훌륭한 작가나 끈기있는 디자이너, 또 건강한 독자들의 운동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경계가 희미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설 이유가 없다. 계속 해야한다. 참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꿈틀거림이 아닐 수 없다.